어떤 기사 헤드라인을 보니까, 재일 교포 래퍼 미치노 우리(道野羽理) 씨를 '투사'라고 하더라고요. 투사라…. 참 고매한 단어 같아요. 생각해보면 힙합에는 호전적인 이미지가 줄곧 따라붙는 느낌이에요. 저보다 일곱 살 많은 오빠한테 들었는데, 옛날 한국에도 '힙합 전사'라는 말이 유행했다면서요? 뭐, 한국은 둘째 치고 힙합에서 전사 이미지로 가장 유명한 건 ...
“저는 당신을 사랑하나요?” “안타깝게도.” “안타깝네요.” 카페에는 재즈가 울린다. 둘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색소폰 소리. 재즈가 싫으신가요? 굳이 물을 사람은 없겠지만,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좋아하진 않지만요. 그렇지만, 빨려드는 순간이 있어요. 이 그루브의 포로가 되었다 싶은 순간이 종종 찾아와요. 제가 찾는다고 오지 않아요. 그래...
-1- 눈 떠보니 모르는 천장이었다. 벌떡 일어나려고 보니 링겔이 꽂혀있어 손등이 따끔거렸고, 옆에서 뒤늦게 팔을 뻗어 나를 말려 결국 허리를 반도 못 일으킨 채 다시 몸을 천천히 누였다. “정신 들어?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가 물었다. 반 친구 미희다. 응급실인 듯한데, 여기 눕기까지의 과정이 가물가물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물었다. “나야말...
분명히 우린 2019년 11월에 만나기로 했고, 내 사정으로 인해 2020년 2월로 미뤘다가, 전 지구적 재앙 때문에 만남은 더 기약 없이 밀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전역이 다가오고 있었다. 만세. 작년 11월에는 밴드 “데프헤븐(Deafheaven)”의 내한 공연이 잡혀있었다. 유일하게 알고 즐기는 메탈 밴드였고, 그들이 내한한다는 소식에 평소 콘서...
군대에 오면서 공부라든지, 운동이라든지, 자·타의로 이런저런 목표를 세웠고, 풍화되어 먼지처럼 바스라져 흩어진 무수한 다짐 속 거의 유일하다시피 형체를 유지하며 박동하고 있는 계획은, 독서다. 많다면 많고, 진정 독서광들과 비교했을 때는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작년 군에 있는 기간만 해서 읽은 책 목록을 정리하니 그래도 50권 이상의 숫자에 육박한 걸 보...
약속의 장소는 필시 푸르르리라. 꿈을 사로잡은 색채는 10년―혹은 11년―전 숨은그림찾기 속 해저 도시 풍경에서 비롯됐다. 다다미방 위 손가락-인간은 펜으로 된 빗자루 타고 커어다란 바위틈에 내려앉아 식사한다. 학생, 그 집 티-타임도 머그컵 잔을 우아하게 감싸쥐며 아뜨아뜨 홀짝이나? 고막에 고인 수포 소리 비집고 목소리가 떨려와 황급히 빛을 맞았다. 푸르...
당신은 그동안 사과를 제대로 본적이 없어요. 영화 〈시〉의 김용탁 시인은 사과를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처음 맞은 병영문학상에는 마음먹고 여섯 편의 시를 써 응모했다. 충분히 시적인, 그러나 아마도 시가 아닌 운문. 나보다 오래된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김기림의 시구를 읊으며 감탄하고 시론을 읽고는 좌절했다. 시란 언어의 건축과 같아서 정교한 설계가...
인터넷에서 눌린 삶의 정동이 싹을 틔운다 빛 쬐인 그늘 평면이 된 세상에 사람이 섰다 상처의 낙엽 바스락 딛고 서는 호소의 물결 차게 비웃는 시가 되지 말기를 조심히 바라고 있다
※2020 병영문학상 동명의 제출작 「미스에듀케이션 오브 노미희」의 원안으로, 실제 제출작과는 상이한 작품임을 알립니다. -1- 장문의 영문 메일이 왔다. 그것이 신변에 위협이 될 내용, 그러니까 일종의 협박 메일이라는 사실은 같은 본문의 메일을 몇 통 더 받은 뒤에야 알 수 있었다. -2- 최대한 엘레강스하고 힙한 앰비언트를 샘플링한 웨스트 코스트 붐뱁 ...
제2부 숲에서 길을 잃고, 한 오두막에 머물다 벌써 3일이 지났습니다.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아 신곡을 사흘 정도 듣지 못해,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슬슬 불안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불안의 원인이 실종한 카모메 씨 외에도 늘어난 걸 보면 좀 복잡한 기분입니다. 행방불명인 카모메 씨는 아직도 못 찾았고, 저마저 전파가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아라자와P와...
제1부 저는 아이돌 그룹 "LODY"의 전용 스튜디오에서 세션맨이자 엔지니어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쿠로노 사다메(黒野定)입니다. 직접 작사·작곡·편곡을 하시는 리더 유리 카모메(百合花模女) 씨는 오늘도 스튜디오 소파에서 뒹굴며 고뇌하고 있습니다. 의뢰받은 애니메이션 엔딩 테마를 만들 모티프가 떠오르지 않는 모양입니다. "놀지 말고 일해주세요." "나는 노는 ...
"선배, 좀 어정쩡하죠?" 기분이 묘해진 상태로 말을 걸어보았다. "저 날고 있어요." "원래 처음엔 어정쩡한 게 정상이야." 선배는 날지 않았다. "선배는 이 실험실에 자주 와요?" "여기? 뭐, 가끔씩……." 이곳이 실제로 실험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한없이 넓은 방은 사방으로 정말 모든 게 새파랬다. 사람의 마음을 비장하게 만들어주는 어두운 푸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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